마지막 관람. 여배우 회차는 처음인데, 남배우 버전과는 또 다른 재미와 감동이 있었다. 특히 단순히 여배우를 캐스팅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대사와 내용 일부를 새롭게 변경한 점이 좋았다.
너무 잘 만들어졌기에 역설적으로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극.
작중 등장인물들의 고뇌와 고통이 생생하게 드러났다. 겪는 사건의 수위로는 훨씬 심한 극도 많지만 이 작품은 얽혀든 감정과 엇갈린 상황의 아이러니를 무척이나 묵직하게 관객에게 투척한다. 90분짜리 극이지만 매우 밀도가 높아서 2시간 이상처럼 느껴졌다. 지루하다는 의미가 아니라, 담긴 내용이 굉장히 촘촘하고 진중하기 때문이다.
<프라이드> 이후로 간만에 ‘너무 좋아서 2회차는 못 보겠는’ 극을 만났다.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성소수자를 다루고 있다. 퀴어를 주제로 이렇게 밀도 높고 아린 작품이 여러 편 나오는 것은 현 사회 구조에서는 어쩌면 필연일 것이다...
감정의 혼란, 사랑, 물결
남/여 페어가 있어서 같이 보면 더 좋을 것 같아요
영국의 문학과 셰익스피어에 대한 이야기들. 바다와 섬 사람들, 그것이 문학에 끼친 영향, 바다를 향한 갈망과 희곡의 연관관계를 사후 분석하는 결론들, 필연적임을, 운명적임을 부르짖는 열정적인 토로.
나는 영국인이 아닌 나라의 관객으로서, 두 사람이 가진 영문학에 대한 자존심과 우월감을 느낀다.
두 사람이 의자 위와 책상 위를 오르며 감정적 고양을 일으키는 그 장면에 조명이 흰 불빛을 비추며 말한다.
'자, 벅차오를 시간이야'
나는 그것을 뚱하게 보며 생각한다.
저 조명과 책상위에 오르는 동작 모두 관객들에게 감정적 고양을 일으키기 위한 장치들이로군.
노골적이다.
하고.
나는 연출자의 의도에 상당히 잘 이끌려가는 타입의 관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. 왜일까. 이 공연에서는 두 사람의 감정선을 따라가기가 어렵다.
바로 다음 장면에서 냉정해진 교수와 애타는 제자의 장면 장면들에서도, 냉정한 교수를 이해하지 못하고, 그것에 애타서 절절매는 제자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고,
1부를 마무리해서 기쁨에 취한 두 사람이 축배를 앞둔 장면에서, 삐걱거리는 소리의 정체가 뭘까 갸우뚱하며, 드디어 마음을 연 교수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는 때에, 그것을 회피하며 가버리는 롤란트도 이해하기 어려웠다.
교수와 더 친해지고,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 지 더 알고싶었던 게 아니였나?
그 기회가 왔는데 왜 피해버리는거야? 뭔가 직접적인 트리거가 눌린것도 아니였잖아
하고 두 사람 모두 이해하기 어려워서 더 그랬다.
롤란트가 Y의 아내와 모종의 관계였던 것은 일단 둘째치고, 롤란트는 Y에게 마지막에는 어떤 감정이였고 어쩌고 싶은 것인지가 잘 읽히지 않아서 이 극이 명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.
스승을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성애의 감정이 아니였기 때문에 거절하는 것이였을까.
아니면 시대적 한계와 스승에 대한 죄책감으로 그를 사랑하지만 떠나기를 선택한것일까.